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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에도 운명이 있는가?

이사야 41 : 1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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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헌배
기사입력 2020-08-23

 

올해 여름은 비로 인하여 피해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몇 일간은 무더웠습니다. 라는 것은 단 하룻밤 사이에도 수년간 공들인 농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또한 수천 또는 수억의 돈을 빌려 하우스 농사를 지었다 하더라도 하룻밤 동안에 눈이 많이 와 버리면 그 많은 공도 헛수고로 돌아갑니다.

 

자연재해를 그나마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공장을 지어놓고 열심히 생산을 합니다. 그러나 하룻밤에 부는 바람으로 인하여 수백억의 손해를 입는 것이 사람입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태풍피해는 부산, 울산 공단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은 많은 공을 들이고도 손해 보거나 그것이 무너질 때에는 하룻밤에서 이틀이면 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일은 참으로 인간의 노력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한 농촌이나 공단의 일 만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국가의 일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었습니다.

 

1945815일은 세계 제 2차대전이 끝난 날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미국에게 항복을 선언한 날입니다. 그래서 잠시나마 한국 사람들은 들 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남북의 분단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1945815일을 기점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얻은 것들입니다.

 

첫째,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둘째, 조선이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다음은 잃은 것들입니다.

 

첫째, 한반도가 곧장 분단되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 날을 반드시 기쁜 날 만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둘째, 그 날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만주(滿洲)를 잃어 버렸습니다. 적어도 그 날 이전에 우리 조상들은 기차 타고 만주, 요동, 산동이라는 대지를 찾아다니고 밟을 수 있었지만, 그 날 이후부터는 그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1945815일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기차 타고 만주 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셋째, 미군정 아래에 있었던 남한은 그 날 이후부터 엄청난 갈등들을 일으키며, 좌우익 간의 혈전을 벌였습니다. 서로 간에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즉, 그 날 이후부터는 우리 민족끼리 서로 미워하며, 죽이는 일들을 본격적으로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교통 상황을 볼 때 적어도 그 날 이전에는 부산에서 아침을 먹고, 평양에서 점심을 먹으며, 만주 요동성의 중심도시인 심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철저한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졌다면, 그 다음 날 아침식사는 만주의 백두산 근처인 연길에서, 그 다음 날 만찬은 부여의 중심지인 송화강에서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날 만찬은 발해의 중심지인 흑룡강 주변을 답사 한 뒤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이전의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었더라면, 아니, 전후처리 협상이 조금 만 더 우리에게 유리하게 되었더라도, 오늘날의 중. 고등학생들은 기차 타고 송화강으로, 흑룡강으로 수학여행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단 8일 밖에 참전하지 않은 소련 때문에 물거품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미워했던 일본 제국이 이루었던 일이지만, 그래서 불평스러웠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만큼은 우리가 잃지 말았어야 했을 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사를 움직이시는 신께서는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리하여 저는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살피려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과 여러 신들 사이에 벌어지는 소송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에서는 각 나라와 각 민족이 섬기는 신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는 비단 성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나 우리 주변의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국교는 아닐지라도 그들이 믿는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미국 역사는 많은 유럽 사람들이 이주 되어 간 역사인데, 종교적으로 따지면 근세 미국의 개척사는 개신교 사람들의 이주와 관계가 깊다 해야 하겠습니다.

 

이 뿐 아니라 유럽 사람들이 믿는 종교도 기독교입니다. 이를테면 유럽은 기독교의 대륙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는 유럽에 있는 박물관들을 가 보면 별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제일 먼저 공산주의 국가를 세웠던 러시아를 가도 기독교 유물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양 사람들이 그나마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종교는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러면 북한의 신은 누구입니까?-- 일본 사람들이 섬기는 신은 무엇이겠습니까?-- 한 때는 조선에서도 그 신에게 예를 갖추었습니다. 북한에는 신이 있습니까? 김일성 신입니까? 남한은 다(多)종교 사회이기 때문에 민족 신은 없습니까?

 

제가 이리 말씀드리니까 약간 황당하시죠?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본문 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여기서 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인 것으로 보입니다.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서로 변론하자

 

그러니까 이 본문은 하나님과 여러 신들 사이에 벌어지는 소송에 관한 비유입니다. 예언자는 그들이 믿는,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믿는 그 신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그렇다면 바벨론 제국이 믿는 신은 누구입니까? 낯설게 들리겠지만 저는 마르둑으로 배웠습니다. 그럼 가나안 사람들이 믿는 신은 무엇 입니까? 그 이름은 바알과 아세라입니다.

 

이와 같이 고대 이스라엘 주변에는 각 민족마다 믿는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그 민족의 신이 누구냐 하는 정도가 아니라 각 민족의 전쟁은 바로 신들의 전쟁으로 이해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고대 유대 사람들은 자기들의 멸망을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의 패배로 느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민족들만 심판을 받거나 대화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민족들이 믿는 신들과 변론하자는 말이 됩니다.

 

2절에서 3절을 읽겠습니다. (읽음) : 이 부분이 암시하는 바는 신 바벨로니아의 임금이나 페르시아 임금 고레스라도 모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4절에 이르기를, (읽음)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참 신이시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이어서 5, (읽음) : 그 만큼 확실히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이 최종적 승리를 이루실 뿐만 아니라 결국 그 분 앞에 두려워 떨게 될 것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자들은 간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로 간이 배 밖에 나오는 것이죠? 왜요? 그 신을 믿고 그 신이 자기를 쓰시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그냥 외관상 드러난 현상을 본다면 망해가는 나라 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며, 최종적으로 어떤 민족이나 그 민족이 믿었던 신들까지도 불러서 변론하거나 그 신들조차도 심판을 하실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민족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확실히 신앙에 따라 그들의 삶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견주어 우리 민족의 아픔에 대해 잠시 상고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19458월은 민족이 갈라졌고, 5년 뒤에는 한국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북한이 믿는 신앙과 남한이 믿었던 신앙이나 신념이 달랐던 것입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본문에 견준다면 꼭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 민족들이 믿는 신관(神觀)과 그에 따른 민족의 결단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고통을 겪은 것은 모르긴 몰라도 민족성에 문제가 있거나 조상들이 죄가 많아서 일 것입니다. 이거 그냥 드리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만큼은 틀림없이 뚜렷한 까닭이 있어서 그토록 큰 고통들을 겪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택한 백성이라면 그래야 맞습니다. 무어라고 잘 설명은 못하겠는데, 적어도 그런 느낌은 있어야 합니다. 그것조차도 없다면 그 나라의 앞날은 보장 받지 못합니다.

 

이런 예가 꼭히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 전 토요일 저녁에 KBS 1TV에서 한국적 음악의 한 장르를 소개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있었을 국악 풍의 가락을 소개했다는 뜻입니다. 제가 그것을 잠시 들었습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국악으로 불리는 판소리나 그 어떤 노래의 가락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관심 있으시면 귀라도 기울려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듣기에 그 노래 가락은 구슬펐습니다. 더 나아가 신세한탄 하듯 들렸습니다.

 

저는 몽골 민속음악도 들어 봤습니다. 제 주관적 감정인지는 모르겠는데, 힘이 있고, 빠르고 경쾌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민족은 세계를 지배한 과거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종묘와 사직이니 뭐니 했던 조선시대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잠 옵니다. 좀 안 된 말이지만 그렇습니다. 여러분, 혹시 유럽 사람들이 밤에 모여서 춤을 출 때 어떻게 추면서 축제를 하는지 보셨습니까? 한 마디로 신나고 때로는 우아하게 놉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하게 기억되는 축제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유월절인데, 이 유월절 축제는 학자에 따라 껑충 껑충 축제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껑충 껑충 뛰면서 놀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조선의 언어나 음악이나 신앙은 껑충 껑충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몽골의 음악은 능히 껑충 껑충이 되고도 남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언어나 음악이나 신앙은 그 민족의 성격을 결정하고 그것이 곧 신앙이 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그 하나님이 바로 민족의 구세주가 된다고 믿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나 일제시대 때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는 지 보자는 말씀입니다.

 

일제시대의 대표적 시인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소월 김정식 선생님이 듭니다. 그 분의 대표적 시인 진달래 꽃은 철저한 이별을 노래합니다.

 

육당 최남선은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말하며, “때린다, 부순다, 무너뜨린다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때리고, 부수고, 무너뜨릴 때에는 새로운 창조를 감안하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육당이 꿈꾸었던 새 세계는 무엇입니까? 그런 거 밝힌 일 있습디까?

 

만해 한용운은 말하기를 , 님은 떠났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며 님이 가 버린 심정의 알 수 없는 복선을 선언하였습니다. 도대체 한용운의 님은 누구입니까?

 

그나마 윤동주의 시에는 낭만이라도 있었습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어쩌구 저쩌구, 별이 아슬히 멀 듯 어머님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윤동주는 만주에 있는 용정에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선각자들이 꿈꾸었던 세상이 무엇이냐?’ 이 말입니다.

 

님은 떠나고, 별은 쓸쓸하고, 님과는 헤어져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슬픔조차도 내색할 수 없는 그런 뻔뻔스러움이 좋습니까? 왜 굳이 그런 걸 노래해야 합니까? 좀 더 잘 되고, 좀 더 건설적이고, 좀 더 긍적적이면 어디가 덧난답디까? 이게 무슨 현실이라도 되어야 했던지 1950년 이후 얼마나 많은 이산가족이 생겼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현실이 아무리 암울해도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실 야곱이 그 지경 쯤 되면 형하고 만나는 것 포기할 법 합니다. 아마 우리 조상들 같았으면 에서의 고향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할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습니까? 그토록 꼬인 형과의 관계를 풀기 위해 야곱은 브니엘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시대에 있었던 총질 못지않게 1945년 뒤부터도 여전히 과격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제 35년 간 있었던 일본 사람들의 조선에 대한 학살 못지않게 1950년부터 1960년에 이르는 10년간의 학살이 많았다는 것이 통계입니다.

 

즉, 일본 사람이 죽인 조선 사람의 수() 못지않게 이승만 정권 10년 동안 있었던 조선 사람들끼리의 학살도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갈등하고 미워하고 죽이느라 난리였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조선 시대에는 당쟁이나 왕자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권력 다툼으로 피가 얼룩졌습니다. 조선말에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미워하다가 마치 시아버지의 주도인 것처럼 꾸며 며느리를 죽인 사건이 바로 명성왕후 살인입니다. 그리고 실지로 일본 사람들이 민비를 죽이기 전에 이미 시아버지인 대원군이 며느리를 죽이려 했습니다.

 

아니오, 대원군 자신이 그의 형인 흥인군을 죽인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직접 자기 손으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랬습니다. 이방원은 이복형제들 다 죽였고, 수양군은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사도세자는 그의 아버지가 뒤주에 가두어 죽였습니다.

 

이런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이겠습니까? 물론 다른 나라라 할지라도 권력자들 사이에 각축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조선 시대의 이씨 왕가 씨족사는 그 시대로만 본다면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그 당시 유럽은 적어도 자유와 혁명이라는 그럴싸한 명분 때문에 투쟁했지만 조선의 씨족사는 그와 전혀 달랐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까닭 없이 후손들이 고통을 겪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이는 단순히 조상을 탓 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점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 좋지 않은 굴레들을 벗기지 못한다면 후손들에게도 이 악순환의 굴레들을 물려줘야 합니다.

 

그나마 우리가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어 이만큼이나마 좋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어 팔자 고친다는 말이 우연히 나온 게 아닙니다. 그거 상당히 뼈있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더라도 그냥 믿으면 안 됩니다. 잘 못 믿어 이상한 짓을 해도 안 됩니다. 잘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의 운명이 좋아질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왜 주일마다 예배당에 와서 예배 하십니까? 흔히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을 빌릴 때 예수 믿고 팔자 고치기 위함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개인이나 한 가정에만 해당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나라의 운명까지도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걸 성경 식으로 쓰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우리 민족의 악순환이 끊기고 좋은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예언자는 이를 분명히 합니다.

 

개인의 일도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사람의 삶은 대체로 길어도 백년을 못 넘깁니다. 그 가운데에서 많은 갈등을 합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생들은 대학만 들어가면 무슨 용 빼는 재주라도 가지는 양 기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막상 들어 가보면 별 수 없습니다. 거기서도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저보다 잘 난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은 날고뛰는 사람들 천지이구나하는 것을 곧바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다 일이 제 맘대로 됩디까? 거기서 얻는 성취감도 어쩌면 부분적인 만족감일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 못 얻는 것도 꽤나 많습니다.

 

한 나라를 거느리고 귀족을 통합하며, 각 귀족들의 사병들을 모두 빼앗았던 이방원도 그의 맏아들만큼은 맘대로 못했습니다. 후백제를 세우고, 신라를 무너뜨린 견훤도 그 자식들을 못 다스려 결국은 왕건한테 까지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113만 수나라 군대를 무너뜨린 대()고구려도 결국은 대막리지(연개소문)의 아들들 사이의 알력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천하를 움켜쥔 권력자라 할지라도 그 마누라의 바람기 하나도 어찌 못했던 게 역사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인간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정말 솔직하고 낮은 맘으로 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 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통일 염원 75주년을 맞이하여 겸손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민족과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 위에 하나님의 돌보심과 도우심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민족이 조상 적부터 타고 내려온 물려받은 좋지 않은 인습들을 이제는 정리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전통을 세우고 그로 인하여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루며, 세계에서 으뜸가는 일등 민족, 일등국가로 삼아주소서. 우리 교회들에 속한 모든 가정들을 살피시고, 그 가정들의 형편들을 따라 어려움들을 풀어 주소서, 교회들로 인하여 지역들이 복 받는 일들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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