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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시대의 제네바는 어땠을까?

제네바의 목양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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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헌배
기사입력 2020-05-30

 

사람들은 흔히 칼뱅 하면 장로교이고, 그래서 장로교의 창시자로 명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외로 한국신학계에서 칼뱅시대의 목양방식이 소개 된 일이 그리 오래되지 못한다. 특히 통합 측 신학계에서 그런 경향이 있다.

 

물론 2천 년 대에 들어서 일부의 한국 신학자들이 칼뱅시대의 목양방식을 소개했지만 여전히 통합 측에서는 이런 분야의 전문가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또 연구 했더라도 뭔가 미흡한 듯한 글들도 있다.

 

이런 문제는 교회정치의 문제에 맞물리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다. 또 어떤 학자들은 부담 때문에 가급적 중립적 위치를 고수하려 할 만도 한 주제일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을 법한 많은 사태들에 대해 객관적 사실들을 알려준다는 것 또한 청중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사태를 잘 모르는 것 보다는 그래도 좀 아는 게 좋을 듯 하여, 약간의 기술을 한다:

 

기본적으로 16세기 제네바 교회의 시스템은 ‘christendom(기독교국 또는 국가교회)’이다. 이에 비해 한국 장로파 교회는 ‘christendom’이 아니다. 여기서부터 이미 개념을 공유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칼빈, 칼빈 해 온 듯하다.

 

더 쉽게 말하면, 16세기 제네바의 목양방식은 개()교회주의가 아니다.

 

그 당시 제네바의 인구는 전성기 때에 대략 2만 여명으로 추정하며, 교회 수도 그다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목사 vs() 교인들의 비율을 평균 내면 대략 목사 한 명이 천명 이상의 교인들을 담당해야 할 정도로 목사들의 수가 모자랐을 뿐만 아니라 일단 목사 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다. 물론 변두리(?) 교회에서는 교인수가 적었을 것이고, 많이 모이는 교회는 목사의 업무부담도 그만큼 컸을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목양의 방식이기 때문에 목사회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 목사고시의 한 예를 <경건과 학문>에서도 게시한 바 있으며,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를 번역하여 올린 글이 있기도 하다.

 

제네바의 목사들은 일종의 고위직 공무원에 비교될 정도이며, 그 당시의 목사들은 일리트 그룹에 속한다.

 

매주 화요일에는 목사회가 열렸고, 매주 목요일에는 컨시스토리가 열렸다.

 

목사들의 주 업무는 설교, 성찬 집례, 예배 집례, 심방, 상담, 컨시스토리 참석, 교도소 방문, 구빈원에서 일하는 집사들과의 만남, 제네바 아카데미에서의 교육, 세례문답자들에 대한 교리교육 등이다.

 

목사들에게는 임기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3년에 한 번씩 감사를 받았다고는 하는 데 실은 매주 제네바 목사회가 열린 데다, 공동목양의 방식이고, 목사회의 의장이 칼빈이며(칼빈은 목사다), 3개월에 한 번씩 목사들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하니, 3년에 한 번씩 받는 감사가 뭐 그리 중요했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 신학박사들(교사들)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3. 장로들

 

장로들은 기본적으로 시의원들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장로선출이 먼저가 아니라 시의회의 의원이 되어야 한다.

 

제네바 시의회에서는 매년 12명의 시의원들을 제네바 컨시스토리로 파송했는데, 그들을 일컬어 장로로 부른다.

 

장로의 직분은 다음과 같다:

 

삶에 있어서 모범을 보이며, 타인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

()위원회에서는 두 명을 선택하고, 60인 위원회에서는 4명을 그리고 200인 위원회에서는 6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도시에서 모든 사람들을 감시한다.

목사들의 소환을 받아야 선출될 수 있다(즉 목사들의 개입 없이는 선출될 수 없다).

일 년에 한 번은, 년 말에 반드시 컨시스토리의 구성원들(seigneury)로부터 그 직무(장로)를 계속 수행하게 할 것인지, 그만 두게 할 것인지를 허락받아야 한다. 그러나 부당하게 그 직무를 그만 두게 해서는 안 된다(J. Calvin, “Draft Ecclesiastical Ordinances (1541),” in Calvin: Theological TreatisesJ. K. S. Reid ed.,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8), 63-64).

 

그 당시에는 장로가 교인들의 투표로 선출되지 않았다. 위원회에서 선임했던 간접선출이었다!

 

장로의 임기는 1년이며, 년 말에 반드시 컨티뉴 or 체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컨티뉴 되면 그 다음 해에도 장로직을 연임할 수 있고, 체인지로 결정되면 그 다음 해에는 연임하지 못한다.

 

그래서 칼뱅시대의 장로 임기는 1년이지만 별 일 없으면, 연임하기 때문에 그 직책을 지속할 수 있다.

 

장로의 직무는 컨시스토리의 참여인데, 이를 요사이의 개념으로 굳이 분석한다면, 형사권 또는 선도부와 비슷하다. 쉽게 말해 그 도시의 시민들이나 교인들을 감시하는 직책이다.

 

교인들이나 시민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지, 각 가정들은 평안한 지, 거리에 침 뱉고 다니는 사람은 없는 지, 이단에 빠진 사람은 없는 지 등. 심방 다니면서 사람들을 감시하는 일종의 선도부와 비슷하다.

 

* 이 대목이 사실 한국의 사태와는 많이 낯 설어 보이는데, 사실 그 당시의 장로들은 목사들과 경쟁하거나 갈등하는 관계로 보기 어렵다. , 장로의 직무는 교인들을 감시하고, 살피는 데 있지, 목사하고 갈등 일으킬 사태가 아니다!

 

다시 말해 컨시스토리는 시민들을 치리 하는 기관이지, 목사를 감시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물론 목사들도 심방이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목사들은 업무가 많다. 굳이 목사와 장로와의 관계를 컨시스토리라는 구조에서 구분해 본다면, 장로는 형사권을 가졌고, 목사는 교도권을 가졌다. 그래서 이정숙 박사는 컨시스토리를 강압적 상담 서비스 기관이라는 외국 학자의 견해를 빌리기도 한다.

 

당연히 장로들에게도 급료가 지급되었다. 물론 더 연구해 보기는 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목사들의 급료(페이 또는 사례비)가 장로들보다는 좀 더 많았지 않겠나? 추론은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연구해 보아야 할 주제다!

 

왜냐하면 목사들은 교회에서의 집례도 했기 때문에 월급(?)이 조금 더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4. 집사들

 

집사들은 기본적으로 구빈원에서 복지와 돌봄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그 당시의 헌금은 적어도 절반 이상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칼뱅의 주장이 있었다는 것을 모 학자의 글을 통해 접한 적 있다.

 

요사이에는 헌금이라고 하지만 칼뱅시대의 기준으로 한다면, ‘연보라는 뜻이 더 어울릴 법 하기도 하다.

 

집사들을 요사이 개념에서 살피면, 아마도 복지사나 간호사와 비슷하다. ‘교회법령에서는 집사들의 임기를 찾기 어렵지만 장로들의 임기가 1년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집사들의 임기도 1년 아니었겠나 추론하기도 한다. 실지로 제1 스코틀랜드 치리서에서는 집사의 임기를 1년으로 기록해 두었다.

 

집사들에게 급료(월급?)’를 주었는가에 대해 연구해 볼 주제인데, 아무래도 급료가 지급되었어야 했을 듯하다. 복지사와 간호사처럼 일 하는 사람들에게 급료가 없다면 낯 설게 느껴진다.

 

목사와 교사(신학박사)에게는 임기제가 적용되지 않았고, 장로와 집사에게는 임기제가 적용되었다.

 

장로의 임기가 끝난 후, 집사를 할 수 있는가? 그렇다.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집사를 한 후, 장로를 할 수도 있는가? 그렇다. 당연하다!

 

한국장로파 교회에서는 장로와 집사를 서열처럼 여기지만 실지로 제네바에서의 개념은 다르다. 그리고 훗날 쓰여 진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를 봐도 총회에 굳이 목사와 장로만으로 참석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목사와 장로가 주를 이루지만 필요하다면 다른 직책자들도 참석할 수 있을 여지가 보인다.

 

사실 16세기 제네바에서는 개()교회의 당회가 없었다. 치리는 컨시스토리에서 이루어진다.

 

컨시스토리는 크게 다섯 가지의 직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1. 시민행정관, 2. 소환관, 3. 서기, 4. 목사들, 5. 장로들이다.

 

컨시스토리는 요사이의 형법(형사) 법정과 같은 기능은 아닌 듯하다. 그러니까 형사법정과 같은 기능은 컨시스토리의 범위를 넘어 선다.

 

컨시스토리는 일종의 치리(훈련) 기관인데, 주로 이혼문제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컨시스토리는 오늘날의 가정법원과도 비슷한데, 굳이 이혼 문제만 다루지는 않았다. 컨시스토리에서 많이 주었던 처벌은 수찬정지였다.

 

* 컨시스토리

 

이정숙은 ‘consistory’라는 단어를 킹던(Robert M. Kingdon)의 표현을 빌려, ‘심리 법정’, ‘강압적 상담 서비스’, ‘교육 기관으로 이해했다(이정숙, “출교에 관한 존 칼빈의 신학과 제네바 컨시스토리의 활동,” <최근의 칼빈연구> 한국칼빈학회 엮음,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322). 그런데 ‘consistory’의 역할을 본다면 가정법원으로 옮겨도 별 무리가 없다. 필자는 이 단어를 종교 법원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라틴어로 ‘consistorium’이라는 말은 로마 가톨릭의 추기경 회의를 뜻한다. 그 추기경들의 회의는 교황이 주관하거나 참석한 가운데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종교회의 치고는 최고의 기구 중 하나로 이해할 수도 있다. 바로 그 ‘consistorium’이 칼빈의 시대에는 ‘consistory’로 활용되었다. 물론 개혁교회에 있어서의 ‘consistory’는 로마 가톨릭에서 열리는 추기경회의와는 차이가 있지만 칼빈의 시대에는 그 명칭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권위 있는 기구의 이름을 빌려 개혁운동에도 적용한 셈이 된다.

 

누군가는 한국장로파 교회를 일컬어 공 교회라고 하던데, 만일 칼뱅주의 식의 공 교회가 가능하다면, 크리스텐돔처럼 해야 한다. 아무런 책임도 못지면서 목사들을 내동댕이치듯 방치한 사례들이 한두 건이 아닐 텐데, 당위적으로 공 교회라고 선언만 한다고 해서 그게 곧 바로 공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 쉽게 설명하면; 칼뱅시대는 목사고시가 매우 어려웠으며, 그 대신 철저하게 책임지는 공동목양의 방식이었다.

 

과연 한국사회에서 이를 실행할 만한 능력이 되었는가!

 

목사의 안수 또는 입회와 관련해 보자:

 

그 당시 목사의 임직식은 ‘ordinentur’인데, 이 말의 뜻은 서품 또는 목사의 회에 들어간다는 입회(入會)’이다. ‘ordinentur’‘order’라는 단어와 연관하여 볼 수 있는데, ‘order’수도원을 뜻한다. 따라서 목사의 입회식(ordinentur)은 목사들의 회()에 가입하는 중요한 절차였다. 중세에 있어서 수도사들이 된다는 것은, 마치 새로 들어오는 수도사를 선배 수도사들이 부모와 같이 아니면 가족 이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사회의 가족이 된다는 말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이기도 했다. 목사의 임직식을 그런 언어로 이해했다. 칼빈 당시에는 실지로 목사회가 매우 활발히 유기적으로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목사들 간의 토론이 잦았고, 공동목양의 방식을 택하였다. 그래서 바로 그 목사회 때문에 목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한국 장로파 교회가 칼뱅시대의 제네바 교회에 견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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